아이 둘 육아를 하다 보면 하루하루가 정말 정신없이 흘러갑니다.
정신없는 시간 속 나를 돌아볼 시간, 나를 돌볼 시간은 점점 더 부족해지지요.
정말 오랜만에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왔는데요. 내가 나를 대접한 그날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예약 버튼을 누르던 밤, 마음은 이미 치유를 시작했습니다
“이젠 정말 쉬고 싶다.”
27개월 된 첫째와 100일 지난 둘째를 재우고 나면, 제 하루는 밤 11시쯤에서야 비로소 조용해졌습니다. 그날도 설거지를 마치고 소파에 주저앉아 휴대폰을 스크롤 하다가, 우연히 미쉐린 한 스타를 받은 작은 다이닝 공간의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테이블마다 놓인 고급스러운 조명, 세심하게 배치된 꽃, 그리고 정성스레 담긴 요리가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솔직히 ‘부모’라는 타이틀을 단 뒤로는 이런 자리에 가보겠다는 생각조차 사치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화면을 몇 초 더 바라보는 사이, 제 안에서 “이번엔 나를 대접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목소리가 작게 울렸습니다.
주문부터 식사 시간, 드레스 코드까지 상세히 읽어 내려간 뒤 ‘예약하기’ 버튼을 눌렀습니다. 날짜는 토요일 저녁, 테이블은 1인석. 클릭하는 순간, 스스로에게 <회복 예고편>을 선물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예약 후 며칠 동안은 아이들 간식 준비를 하면서도, 식재료 장을 보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설렘으로 간질거렸습니다. ‘엄마’가 아닌 '한 명의 손님'으로 대우받을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에너지가 차오르는 듯했습니다.
세 시간짜리 식사, 오감이 기억한 자존감
식당에 들어서자, 매니저가 “성함으로 예약하신 혼자 오신 손님이시죠?”라고 부드럽게 인사했습니다. 크림색 린넨 테이블보 위에는 제 이름이 적힌 작은 카드와 ‘오늘 하루를 온전히 즐기시길 바랍니다’라는 손 글씨가 놓여 있었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질 뻔했어요. ‘혼자 온 손님’이 아닌 ‘온전히 존중받는 손님’임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코스 요리 중 첫 아뮤즈는 한 입 크기의 초록 토마토 젤리였습니다. 셰프는 “봄기운을 입안 가득 담아 드신 뒤, 천천히 숨을 내쉬어 보세요”라고 설명했습니다. 그 한마디 덕분에 저는 자연스레 천천히 씹고, 향을 음미하고, 목 뒤까지 퍼지는 산뜻함을 느꼈습니다. 늘 ‘빨리’ 먹던 습관이 멈춘 순간이었습니다.
이어서 제철 전복을 부드러운 완두콩 퓨레 위에 얹은 두 번째 전채, 저온 숙성한 도미와 방울토마토 콩소메, 숯 향이 은은한 채끝 스테이크까지 이어지는 코스는 맛만큼이나 완급 조절이 탁월했습니다. 한 코스가 끝날 때마다 직원은 접시를 치우며 제게 “다음 요리는 12분 후에 준비해 드릴 예정입니다. 혹시 속도를 조절해 드릴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세 시간 동안 “누군가가 나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존중한다”는 느낌을 맘껏 누렸습니다. 집에서는 아이가 울기 전에 허겁지겁 숟가락을 내려놓는 일이 다반사였기에, 포크를 내려놓고 숨을 고르는 그 짧은 정적조차 귀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가격을 적어두지 않고 싶었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코스+와인 페어링으로 25만 원을 지불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한 끼에 이 정도 쓰다니’ 하며 머뭇거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날의 25만 원은 단순 계산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로 돌아왔습니다.
미각은 물론, 시각적 아름다움, 귀를 간질이는 설명과 서비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나를 대접할 만한 사람'이라는 자존감을 채워 줬으니까요.
그 순간 저는 알았습니다. 이 소비는 더 이상 ‘사치’가 아니라, ‘회복 비용’이었음을요.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남은 여운 – 사치가 아닌 회복의 증명
다음 날 눈을 뜨니 전날 밤의 부드러운 조도, 접시 가장자리의 미세한 소스 자국까지 생생히 떠올랐습니다. 이상하게도 육아 루틴이 버거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이 이유식을 저으면서, 어제 먹은 완두콩 퓨레와 전복의 조합이 떠오르자 무심코 아이 이유식에 브로콜리 퓨레를 살짝 더해 색과 맛을 다채롭게 만들고 있더군요.
그날 이후, 저는 스트레스 게이지가 차오를 때마다 “지난 번 그 식사처럼 나를 존중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합니다. 하루 5분이라도 조용히 커피를 내리고, 물처럼 마시던 점심을 조금 더 씹어 먹고, 작은 접시에 과일을 예쁘게 담아보기도 합니다. 품격 있는 식사를 통해 배운 ‘느린 호흡’은 일상의 다른 순간에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전 두 가지 다짐을 했습니다.
<1년에 한 번, 나만의 식탁을 예약한다>
기념일도 좋지만, 이유 없이도 스스로를 초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일상의 식탁에도 ‘존중의 한 끼’를 적용한다>
아이와 먹는 김치볶음밥 한 그릇이라도, 향긋한 파슬리 가루를 뿌리고 노란 접시에 담습니다. 작은 디테일이 ‘대접받는 기분’을 환기해 줍니다.
당신만의 회복 비용을 책정해 보세요
한때 저는 ‘비싸다’＝‘사치’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지갑을 여는 행위가 곧 허영의 증명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 한 번, “나를 위해 예약”이라는 버튼을 누른 뒤 깨달았습니다. 몸과 마음이 진짜로 회복되는 방식이라면, 그건 지출이 아니라 투자였습니다.
투자에는 반드시 ‘수익’이 따라오죠. 이번 경우, 수익은 충만한 만족감·새로운 활력·그리고 다음 날의 미소였습니다. 돌아온 가치가 원금을 초과했다면, 이미 훌륭한 투자라 할 수 있습니다.
회복 예산을 정하는 세 가지 단계
- 체크인(마음 상태 확인)
커피 한 잔을 내려 두고, 지금 내 몸과 마음의 피로 지수를 1~10으로 적어 보세요. 숫자가 7 이상이라면 회복 예산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신호입니다.
- 금액 설정(현실적 한도 잡기)
통장 잔액을 들여다보기 전, “내가 온전히 즐거울 수 있는 금액”을 상상해 보세요. 5만 원으로도 충분할 수 있고, 50만 원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타인의 잣대가 아닌, 내 심장이 편안해지는 선을 찾는 것입니다.
- 전용 계좌 혹은 봉투 만들기(심리적 분리)
회복 예산을 생활비와 분리해 두면 ‘쓸까, 말까’ 망설임이 줄어듭니다. 월급일마다 소액이라도 자동이체해 두면, 죄책감보다 기대감이 먼저 찾아옵니다.
“예약 버튼”이 주는 선물 — 회복은 이미 시작된다
예약을 완료하는 그 순간, 우리는 ‘미래의 충전된 나’를 현재로 끌어당기는 주문을 건 셈입니다. 날짜를 떠올리기만 해도 미리 설레고, 메뉴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엔도르핀이 분비됩니다. 뇌과학적으로 기대감은 이미 도파민을 생성해 실제 만족의 일정 부분을 선불로 지급한다고 하죠. 그러니 예약은 단순히 시간을 확보하는 행위가 아니라, 예열된 행복을 오늘부터 즐기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보이는 비용 vs 보이지 않는 수익
보이는 비용 : 식사 가격, 교통비, 시간.
보이지 않는 수익 : 자존감 상승, 재충전된 창의력, 가족·동료에게 돌아가는 긍정 에너지.
예를 들어, 25만 원을 쓰고 하루를 온전히 리프레시한 뒤 프로젝트 아이디어가 술술 떠오르거나, 아이에게 짜증 대신 웃음을 줄 여유가 생겼다면? 이미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수익을 거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회복 비용은 나 혼자만을 위한 사치가 아니라 주변 관계와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순환 투자입니다.
회복 투자를 더 빛나게 만드는 작은 팁
- 기대 의식 만들기 : 예약 날짜까지 남은 날을 캘린더에 표시하고, 하루에 하나씩 작은 셀프 미션(예: 물 2L 마시기, 10분 스트레칭)을 수행해 보세요. 회복의 뿌리를 더욱 단단히 내릴 수 있습니다.
- 기록하기 : 식사를 마친 후 휴대폰 메모에 맛과 향, 느낀 감정을 남겨 두면 다음 회복 투자를 설계할 때 큰 도움이 됩니다.
- 나눔 효과 : 좋은 에너지는 전염됩니다. 귀가 후 가족에게 한 가지 배운 점을 공유하거나, 친구에게 레스토랑 추천과 함께 “너도 한번 너 자신을 초대해 보라”고 권해 보세요. 투자가 확장되어 삶의 네트워크 전반에 긍정적 파동이 퍼집니다.
결국 핵심은 “나를 대접한다”는 의식
금액의 크기가 회복의 깊이를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건 그 순간만큼은 전적으로 나에게 집중하는 태도입니다. 5만 원짜리 디저트 코스라도, 5000원짜리 동네 카페 창가 좌석이라도, 마음속으로 이렇게 선언해 보세요.
“지금 이 시간, 나는 나를 위해 존재한다.”
그 선언이 끝나는 순간, 마음속 회복은 이미 절반 이상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예약된 그날, 깊이 숨 쉬고, 오롯이 맛보고, 마음껏 쉬어 보세요. 그 한 끼, 그 한순간이 앞으로의 바쁜 날들을 더 단단히 버티게 해 주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한 단계 더 진화시켜 줄 것입니다.
그러니 망설이지 마시고, 오늘 당신만의 회복 비용을 책정해 보세요. 작은 숫자 속에 담긴 큰 마음이, 곧 당신을 환하게 밝혀 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