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소에 어떤 소비에 가장 많은 돈을 쓸까요? 누군가는 최신 스마트폰이나 고급차를, 또 누군가는 명품 가방이나 고급 음식에 돈을 씁니다. 물론 그것들도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요즘 들어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주 던집니다.
"이 소비는 시간이 지나도 내 마음속에 남을까?"
나이가 들수록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가장 오래 남는 건 ‘사람’과 함께한 시간, 특히 가족과 보낸 따뜻한 순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옷은 낡고 음식은 소화되지만, 부모님과의 여행, 아이와 나눈 대화, 함께 웃던 식사 자리는 시간이 지나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가족과의 시간에 돈을 쓰는 것의 중요성을 되짚고, 그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드는 방법을 나누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의 가족은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흐름을 되돌릴 수 없다면, 남는 시간을 더 따뜻하게 쓰는 법을 함께 고민해보았으면 합니다.
부모님과의 시간 - '다음에'는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나중에’보다 ‘지금’이 중요한 이유많은 분들이 "조만간 부모님 모시고 여행 가야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조만간'은 언제 오는 걸까요? 바쁘다는 이유로, 비용이 부담된다는 핑계로 우리는 그 순간을 자꾸 미룹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지인은 오랜만에 부모님과 함께한 속초 여행을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왜 진작 이 시간을 만들지 않았을까?”라며 아쉬워하셨지요. 그 여행이 끝나고 6개월 후, 아버지가 건강 문제로 더 이상 먼 거리를 이동하기 어려워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분은 그때의 여행이 부모님과 함께한 마지막 장거리 추억이 되었다며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후회합니다.
"좀 더 자주 연락드릴걸."
"같이 밥 좀 더 많이 먹을걸."
"여행 한 번이라도 더 모실걸."
이런 후회가 더 커지기 전에, 지금 이 순간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소비가 아닐까요?
여행, 식사, 사진… 작고 평범한 것들이 큰 선물이 됩니다부모님과의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꼭 거창한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가까운 온천 여행, 좋아하시는 맛집에서의 식사, 꽃 한 송이, 따뜻한 차 한 잔, 함께 찍은 가족 사진...
이런 작고 평범한 소비가 오히려 부모님께는 가장 깊은 위로와 감동이 됩니다.
문화센터에서 함께 수업을 듣거나, 매달 작은 기념일을 정해 가족의 날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저는 명절마다 부모님께 용돈 대신 가족 식사권을 드립니다. 작은 레스토랑에서 같이 앉아 이야기 나누며 식사를 하는 시간이 부모님께는 “올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하십니다.
물질적인 선물보다 함께하는 시간, 대화, 눈빛, 웃음이 더 큰 선물이라는 것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삽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오늘 저녁 부모님께 전화 한 통 걸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아이들과의 시간 - 아이는 자라지만, 그 순간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엄마, 오늘 놀 수 있어?"라는 질문
어느 날 어린이집 하원 후 집에 돌아오니, 아이가 말했습니다.
"엄마, 오늘은 얼만큼 놀 수 있어?"
그 질문을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매번 "지금은 피곤해서 안돼", "주말에 놀자", "조금만 기다려"라고 말했지만, 그 사이 아이는 점점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날부터 저는 아이와의 시간에 우선순위를 두기로 했습니다. 주말 일정에서 친구들과의 약속보다 아이와의 외출을 먼저 계획하고, 사소한 것도 함께 경험하려 노력했습니다.
놀이터에서 아이의 웃음을 보며 느꼈습니다.
"이 순간이 나중에 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장면일지도 몰라."
장난감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하는 시간'입니다많은 부모님들이 아이를 위해 장난감, 학원, 교육 콘텐츠에 많은 비용을 씁니다. 물론 아이의 미래를 위한 투자도 필요하지만, 지금, 바로 오늘의 아이를 위한 투자는 종종 간과됩니다.
함께하는 여행, 맛있는 외식, 놀이공원 입장권, 아이와 그린 그림 한 장, 같이 만든 쿠키 한 조각…. 이런 소비는 어쩌면 장난감보다 훨씬 더 감정적 안정과 추억을 선물해 줍니다.
그리고 그 추억은 시간이 지나 아이의 인성과 감수성, 관계 능력으로 남습니다. 아이가 부모와 함께한 시간을 '행복했다'고 기억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아닐까요?
가족 문화 만들기: 추억을 남기는 소비법
매주 가족 영화의 날을 만들거나, 월 1회 캠핑을 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런 규칙적인 경험은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고, 가족 간의 유대를 깊게 만듭니다.
저는 매년 아이의 생일에는 장난감 대신 체험형 선물을 합니다. 작년에는 도자기 체험을 했고, 올해는 미니 농장을 함께 운영해보았습니다. 이런 경험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 아이에게 잊지 못할 기억을 심어주었습니다.
'시간'에 쓰는 소비가 결국 우리 삶을 바꿉니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일회성 지출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장기적으로 이익을 주는 '투자'입니다. 돈을 어디에 쓰느냐는 결국 우리의 가치관을 드러내고, 그 가치관은 다시 우리의 일상을 형성합니다. 이 장에서는 시간 소비가 삶을 어떻게 재편하는지 세 가지 축으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1) 삶의 방향을 바꾸는 건 결국 관계입니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지치고, 때로는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걸까?”라는 회의감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런 순간에 힘이 되는 건 명함에 적힌 직함이나 통장 잔고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한 따뜻한 기억입니다.
부모님과 걸었던 산책로를 떠올리면, 지금도 그 계절의 바람 냄새가 느껴집니다.
아이를 안고 들었던 자장가는, 바쁘게 달려온 하루 속에서도 내 마음을 단번에 누그러뜨려 줍니다.
배우자와 마주 앉아 나눴던 허심탄회한 대화는, 삶의 복잡한 문제들을 다시 단순화시켜 줍니다.
이처럼 관계는 정서적 버팀목이자 삶의 나침반 역할을 합니다.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의 ‘성인 발달 연구’(Harvard Study of Adult Development)에 따르면, 삶의 만족도를 가장 크게 좌우하는 요인은 소득이 아니라 ‘가깝고 의미 있는 인간관계’라고 합니다. 75년에 걸쳐 700여 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사람일수록 스트레스가 빠르게 회복되고, 우울·불안 지수가 낮았으며, 심장 질환 발병률도 현저히 낮았다고 합니다.
즉, 관계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건강·행복·회복탄력성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다목적 자산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셈입니다.
2) 돈의 사용법이 곧 삶의 가치관이 됩니다
"돈은 숫자지만, 그 사용처는 감정입니다." 이 말은 곧 우리가 지갑을 열 때마다 ‘나의 우선순위’를 세상에 선언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명품 가방 하나를 살 수도 있고, 그 돈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1박 2일 온천 여행을 갈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남는 것은 브랜드 로고일까요, 아니면 함께한 기억일까요?
특히 ‘경험 지출’은 다음과 같은 선순환을 만듭니다.
경험 구매 → 긍정 감정 증폭
긍정 감정 → 관계의 질 향상
관계 강화 → 삶의 만족도 상승
높아진 만족도 → 소비 패턴의 심리적 안정
이 과정은 한 번 경험을 살 때마다 자기 강화 루프(self‑reinforcing loop)를 이루어, 미래의 소비 결정을 더 현명하게 만듭니다.
📊 심리학 저널 《Journal of Positive Psychology》의 2024년 연구에 따르면, ‘경험형 소비’를 주 1회 이상 실천한 그룹은 물질형 소비 위주 그룹보다 주관적 행복도가 평균 18% 높았고, 가족관계 만족도가 24% 높게 나타났습니다.
3) 행복은 결국 ‘누구와 함께했는가’에서 비롯됩니다
행복 연구의 대가 소냐 류보머스키(Sonya Lyubomirsky) 교수는 행복의 40%가 ‘의도적인 활동’, 다시 말해 우리가 선택하는 행동과 태도에서 온다고 설명합니다. 그중에서도 ‘타인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활동’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죠.
가족과 영화를 보고 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가 “오늘 너무 재밌었어!”라며 손을 꼬옥 잡을 때, 우리는 자연스레 삶의 목적을 확인합니다.
아무리 화려한 저택도 웃음소리가 울리지 않는다면 공허한 무대일 뿐입니다.
반대로 소박한 거실 한구석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한다면 그곳이 최고의 휴양지가 됩니다.
가족과의 시간에 쓰는 돈은 이렇게 우리의 일상을 ‘공간’에서 ‘관계’ 중심으로 재구조화합니다. 물질적 풍요가 줄 수 없는 정서적 포만감을 채워주기 때문이죠.
위 세 가지 축을 통해 볼 때, 시간을 가족에게 투자하는 소비는 개인적 행복, 정신적 건강, 관계의 안정성을 동시에 키우는 ‘다중 수익’ 구조입니다. 그러니 이 지출을 사치라 여기지 마시고, 가장 우선적인 투자 항목으로 배치해 보시길 권합니다.
오늘, 가족을 위한 소비를 해보세요
혹시 요즘 지갑이 무겁지 않으신가요? 신중한 소비를 고민하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오늘 하루, 가족을 위한 소비를 해보시길 권합니다. 부모님께 꽃 한 다발을, 아이에게 도서관 나들이를, 배우자에게 함께 걷는 산책을 선물해보세요.
그 소비는 지출로 끝나지 않고, 관계로 돌아오고, 기억으로 남고,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오늘의 선택이, 언젠가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으로 남게 되길 바랍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 바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