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보다 더 크게 감정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가치있는 소비가 있을까요?
오늘은 비쌌지만 자존감, 관계 패턴, 감정 인식을 배우게 된 경험을 공유해보려 합니다.
상담실 문을 두드리기까지 – 망설임과 결심
“심리 상담은 마음이 정말 힘든 사람들만 받는 거 아닐까?”
오랫동안 제 안에서 맴돌던 질문이었습니다. 상담비가 부담스러웠고, ‘낯선 상담사가 과연 저를 이해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죠. 또 괜한 오해를 사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그런 마음들에 발이 자꾸 멈췄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상담실의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상담을 고민하게 된 계기는 반복되는 인간관계의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가까워질수록 상처가 생기고, 결국 관계를 끊어버리는 저의 행동 패턴이 두려웠습니다. “왜 나는 이런 상황을 반복하는 걸까?”라는 질문이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어보고, 영상도 찾아보았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SNS에서 우연히 한 분의 심리 상담 후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세 번 울고 네 번 웃었다”는 진솔한 기록과 함께 따뜻해진 눈빛이 담긴 사진이 함께 있었죠. 그 글을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울어보고, 웃어보면 조금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이후 상담센터를 알아보기 시작했지만, 회당 10만 원 내외의 비용은 쉽게 결심하기 어려운 금액이었습니다. 한 달에 4번만 받아도 월세와 맞먹는 비용이니, 망설일 수밖에 없었죠. ‘이 돈이면 여행을 갈 수 있는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행이 끝난 뒤에도 같은 문제로 다시 힘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저를 상담실 쪽으로 조금씩 이끌었습니다. 결국 6개월만 해보자는 마음으로 상담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상담 계약서에 사인을 하면서 손끝이 떨렸지만, 한편으로는 “적어도 나는 지금 나를 위해 노력해보려 한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결심과 불안이 동시에 존재했던 그 순간, 이미 작은 변화는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상담실에서 마주한 진짜 나 – 자존감, 관계 패턴, 감정 인식
첫 상담에서 상담사 선생님은 저에게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셨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시절이라 생각했지만, 이야기를 꺼내는 도중 울컥 눈물이 났습니다. ‘밝은 아이’로 불리며 무조건 괜찮은 척 했던 기억 뒤에는 “힘든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불안이 있었던 거죠. 상담사 선생님은 그 감정을 “억눌린 슬픔”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처음 듣는 표현이었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 콕 박히는 느낌이었습니다.
몇 번의 상담을 거치면서, 저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반복해왔던 저의 행동 패턴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저를 칭찬하면 ‘이제 실수하면 실망할 거야’라고 스스로 거리를 두었고, 부탁을 거절당하면 ‘이제 이 사람은 나를 싫어하겠지’라며 관계를 먼저 끊어버렸습니다. 상담사 선생님은 이런 행동을 “사람이 나를 떠날까 봐 내가 먼저 떠나는 전략”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전략’이라는 단어에 잠시 멈췄습니다. 알고 보니, 제 무의식이 저를 보호하려고 선택했던 방식이었던 거죠.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처음으로 저 자신이 안쓰럽게 느껴졌습니다.
감정을 인식하는 연습도 꾸준히 했습니다. 하루 세 번 알람을 맞춰두고 ‘지금 느끼는 감정을 한 단어로 적어보기’ 같은 과제를 실천했습니다. 처음엔 ‘좋다’, ‘나쁘다’밖에 표현하지 못했는데, 몇 주가 지나자 ‘서운함’, ‘안도감’, ‘공허함’, ‘기대감’ 같은 좀 더 섬세한 감정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내 감정의 이름을 알아가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일이라는 걸, 그전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훨씬 부드러운 흐름이 생겼습니다. “나는 지금 조금 서운해”라는 말 한마디가 상대방에게는 제 마음을 이해할 기회를 주었고, 저에게는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아주 단순한 훈련이었지만,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제 마음을 ‘제 언어’로 이해하고 다룰 수 있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비용보다 더 컸던 선물 – 삶의 변화와 앞으로의 걸음
심리 상담이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주는 마법은 아닙니다. 6개월간의 상담을 마친 지금도 저는 여전히 불안이라는 낯선 손님을 맞이하곤 합니다. 그런데 예전과 달라진 점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습니다. 과거에는 불안이 찾아오면 “또 이러네, 나는 왜 이럴까?”라며 스스로를 몰아세웠습니다. 불안을 ‘이겨야 할 적’처럼 느꼈고, 이기지 못하면 ‘무능한 나’로 결론지었습니다. 지금은 그 감정을 ‘찰나의 신호’로 받아들입니다. “아, 낯선 상황이라서 불안하구나. 그럴 수도 있지.”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면, 불안은 기세가 꺾이고 저는 한 발 물러서서 상황을 관찰할 여유를 갖게 됩니다.
둘째,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익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상담사는 저에게 ‘그라운딩’이라는 기법을 가르쳐 주셨는데, 불안이 치솟을 때 주변 사물의 색·질감·소리를 하나씩 천천히 호명하는 훈련입니다. 처음엔 ‘이게 과연 효과가 있을까?’ 싶었지만, 몇 차례 연습하다 보니 마음이 정말로 현재로 돌아오는 경험을 했습니다. 덕분에 긴장된 회의 자리에서도 손바닥에 느껴지는 종이컵의 온기나, 창문 넘어로 들려오는 새소리를 인식하면서 숨을 고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상담 과정에서 감정의 언어를 배운 것이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모든 복합 감정을 “짜증”이나 “화”로만 표현했지만, 지금은 “속상하다”, “서운하다”, “두렵다”, “섭섭하다”처럼 더 정확한 표현을 고를 수 있습니다. 감정이 세분화되니 대화도 달라지더군요. 가족에게 “그 말에 서운했어”라고 정직하게 전했을 때, 상대도 방어 대신 공감을 보이며 관계가 한결 부드러워졌습니다. 관계의 균형이란 거창한 단어를 떠올리지 않아도, 매일 ‘감정의 정확한 이름 부르기’만으로도 충분히 가까워질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상담 비용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회차마다 카드 결제를 할 때면 잠시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었어요. 하지만 시간을 두고 보니, 저는 그 돈으로 ‘불안에 휘둘리지 않는 삶의 기술’을 샀다고 생각합니다. 일터에서 실수를 했을 때도 이제는 “이 경험이 알려주는 건 뭘까?”라고 자문하면서, 과도한 자기 비난의 늪에 빠지지 않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생겨나는 두려움도 “겁이 나는 건 당연해. 그렇다면 필요한 준비는 무엇일까?”라고 한발 한발 행동으로 전환해 나갑니다.
주변에서는 종종 묻습니다.
“그 정도 돈을 들일 만큼 가치가 있었어?”
저는 이렇게 답하곤 합니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고, 저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건 가격표를 붙일 수 없는 가치였어요.”
상담이 누구에게나 만능 해답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더 알아가고 싶다, 반복되는 패턴을 끊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면, 상담실 문턱을 한 번쯤 넘어가 보시길 조심스럽게 권해 드립니다. 첫 상담에서 모든 게 달라지지는 않지만, 낯선 방의 소파에 앉아 자신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 보는 그 경험만으로도 “나는 내 삶을 돌볼 자격이 있다”는 확신이 조금씩 자랍니다.
저 또한 완전히 불안을 벗어난 건 아닙니다. 다만 이제는 불안을 외면할 대상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려는 마음의 신호”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상담에서 배운 도구들—그라운딩·마음챙김·감정표현—로 현실을 한 겹 얇게라도 부드럽게 감싸며 걸어갑니다. 그 과정을 통해 저는 매주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나답게’ 단단해지는 중입니다.
그러니 혹시 오늘도 “이 변화에 돈과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을까?” 하고 망설이고 계신다면, 제 경험을 떠올려 봐 주셨으면 합니다. 용기를 내어 건넨 첫걸음이 생각보다 큰 선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요. 상담이라는 여정이 여러분의 삶에도 비용보다 더 큰 선물이 되길, 조용히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