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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요" 왜 이렇게 어려울까?

by bella001 2025. 6. 2.

"싫어요."라는 말, 얼마나 자주 하시나요?

누군가 부탁했을 때,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응"이라고 말하고 돌아서서 한숨 쉰 경험, 누구나 있을 겁니다. 회사에서, 친구 사이에서, 심지어 가족 사이에서도 우리는 종종 마음과는 다른 대답을 합니다.

거절이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왜 그토록 어렵게 느껴지는 걸까요?

 

'싫어요'는 단순한 부정의 말이 아닙니다. 나의 감정, 나의 경계, 나의 욕구를 지키기 위한 중요한 표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절'이라는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고, 누군가를 실망시킬까 두려워하며, "괜히 예민하게 보일까 봐" 걱정합니다.

 

이 글에서는 우리가 '싫어요'를 말하기 어려운 이유를 살펴보고, 그 안에 숨겨진 감정과 사회적 맥락, 그리고 우리가 건강한 거절을 연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싫어요" 왜 이렇게 어려울까?
"싫어요" 왜 이렇게 어려울까?

 

'싫어요'가 금기처럼 느껴지는 이유

우리가 ‘싫어요’라는 말을 꺼내기 어려운 이유는 생각보다 깊고 오래된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시작은 어릴 적부터 받아온 교육 방식과 사회적 분위기에서 비롯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 어른의 말을 잘 듣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웠습니다. "싫어요", "하기 싫어요" 같은 표현은 '버릇없다', '말 안 듣는다'는 낙인을 찍히기 쉬웠고, 결국 우리는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는 대신, 침묵하거나 애써 순응하는 법을 먼저 익히게 되었습니다.

 

이런 방식은 자라면서 더 공고해집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친구 사이에서도 우리는 '예의 바른 사람', '잘 맞춰주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감정의 끝자락을 감추는 연습을 반복합니다. 상대가 부탁했을 때 "미안하지만 그건 어렵겠어요"라고 말하는 대신, "알겠어요",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더 바람직한 반응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거절은 곧 관계를 거스르는 행동, 조화를 깨뜨리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지고, 그로 인해 생기는 갈등은 피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됩니다.

 

여기에 집단주의적 문화가 더해지면 ‘싫어요’는 더욱 말하기 어려운 단어가 됩니다. 한국 사회는 개인의 욕구보다 공동체의 조화와 흐름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조직에서 튀지 않고 잘 융화되는 사람이 평가받고, 모임에서 자기 주장보다는 배려와 순응이 미덕으로 여겨집니다. 이처럼 구성원의 감정보다 관계의 안정을 우선시하는 문화에서는 거절이 단순한 의사 표현이 아니라,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행동이자, 공동체의 균열로까지 과장되기도 합니다.

 

또 하나 간과하기 쉬운 지점은,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느끼고 싶어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좋은 사람은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않는다’, ‘도움을 요청받았을 때는 기꺼이 응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안 돼요’, ‘싫어요’라고 말하는 순간, 내가 무정한 사람, 냉정한 사람처럼 느껴질까 봐 망설이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내 진짜 감정을 눌러두고, 그저 상황에 맞춰 반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사회적 학습과 심리적 압박은 우리로 하여금 거절에 익숙하지 않게 만들고, 그 낯설고 불편한 감정을 피하려는 선택을 반복하게 합니다. 하지만 이런 선택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점점 더 자기 감정을 외면하게 되고, 상대와의 관계에서도 피로감이 누적됩니다.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주는 일이 반복되면서 내 시간이 사라지고, 내 에너지가 고갈되며, 결국에는 ‘나는 왜 항상 참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되는 것이죠.

 

거절을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싫어요'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수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얽혀 있습니다. 단순히 착해서, 혹은 성격이 소심해서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사람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관계에서의 갈등을 두려워하며, 타인의 기분을 책임지는 습관이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감정은 ‘두려움’입니다. 거절하면 상대가 나를 실망할까 봐, 화를 낼까 봐, 혹은 관계가 멀어질까 봐 무서운 겁니다. 그 두려움은 이성적인 계산이 아니라, 아주 오래된 감정적 경험에서 비롯됩니다. 과거에 누군가를 거절했다가 소외당하거나,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기억은 우리를 조심스럽게 만들고, 다시는 그런 상황을 겪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싫다’는 말을 삼키고, 대신 그 사람이 원하는 대답을 내놓습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마음속에서는 이미 지친 상태가 되는 것이죠.

 

두 번째로는 ‘죄책감’이 있습니다. 내가 거절하면 상대가 불편해질까 봐, 나 때문에 일이 꼬일까 봐, 또는 ‘이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억압하게 됩니다. 이런 감정은 책임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더욱 강하게 작용합니다. 상대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지 않으면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것 같고, 내가 도움을 주지 않으면 그 사람이 곤란해질 것 같은 상상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이 감정적으로나 시간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뒤로 밀리게 됩니다.

 

이와 더불어 거절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자존감을 타인의 반응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부탁을 하고, 내가 그것을 들어줄 때 ‘나는 유능한 사람’, ‘필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거절을 했을 때, ‘쓸모없는 사람’, ‘차가운 사람’처럼 느껴지는 불안이 엄습합니다. 그래서 부탁을 받으면 ‘싫다’는 감정보다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릅니다. 결국 내가 하고 싶고, 하기 싫은지는 중요하지 않게 되고, 타인의 기대에 맞추는 일이 우선시됩니다.

 

때로는 자신의 감정조차 명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늘 타인의 기대에 맞추며 살아온 사람은 ‘나는 뭘 원하지?’, ‘지금 이 상황이 왜 불편한 거지?’라는 감정의 기준이 흐릿해져 있습니다. 자기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훈련이 부족했던 탓입니다. 그러니 ‘싫어요’라는 말은 단지 한 문장이 아니라, 자기 감정을 인지하고, 그것을 표현하며,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모든 과정이 필요한 어려운 작업이 됩니다.

 

이렇듯 거절을 하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 안에는 관계에 대한 두려움, 타인 감정에 대한 과도한 책임감, 자존감의 불안정성, 그리고 자기 인식의 부족이라는 여러 가지 층위의 감정과 심리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거절은 단순한 기술이나 말하기 연습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내 마음이 왜 이렇게 반응하는지 이해하고, 그런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연습입니다. 그게 바로 거절을 배우는 진짜 시작이기도 합니다.

 

건강하게 '싫어요'를 말하는 연습

거절은 관계를 끊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건강한 경계를 설정함으로써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연습할 수 있을까요?

 

- 감정 인식부터 시작하기
거절을 잘 하기 위해선 먼저 내 감정을 명확히 인식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지금 이 상황이 불편한가?", "내가 이걸 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뭘까?", "나는 지금 억지로 웃고 있지는 않나?"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훈련이 먼저입니다.

 

- 완곡하지만 단호하게 말하기
'싫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꼭 무례하거나 싸움을 불러일으켜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죄송하지만 이번 주는 시간이 어려워요", "좋은 제안이지만 지금은 제 상황과 맞지 않네요" 같은 표현으로도 충분히 거절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나의 경계를 분명히 표현하면서도 상대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태도입니다.

 

- 작은 상황부터 연습해보기
거절이 어려운 사람이라면 일상 속에서 사소한 것부터 연습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마트 시식 거절하기, 원하지 않는 단체 대화방에서 조용히 나가기, 원치 않는 전화에 "다음에 통화할게요"라고 말하기 같은 아주 작은 실천부터 시작해보세요. 이 작은 실천들이 쌓여, 중요한 순간에도 자기 감정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줍니다.

 

- 거절 이후의 감정도 돌보기
거절을 한 후에도 마음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스스로를 다정하게 다독여주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나는 내 마음을 존중했어", "내가 나를 보호했기 때문에 더 건강한 관계를 만들 수 있을 거야"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싫어요'는 이기심이 아니라 자기 존중

'싫어요'라고 말하는 건 이기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를 존중하고, 상대와의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의사소통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싫어요"라는 말을 삼켜가며 내 마음을 억누를 필요가 없습니다. 내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상대를 향한 예의를 지키며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성숙함 아닐까요?

 

거절은 단절이 아니라 연결의 또 다른 방식입니다. 나를 지키는 거절, 그리고 상대를 존중하는 표현을 통해 더 단단하고 진정한 관계를 만들어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