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번 돈보다 더 가치있는 소비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제 경험을 뒤돌아보며 하나씩 찾아가보고 있는데요.
이번엔 비행기 값보다 더 컸던 자유와 성장의 경험에 대해 적어보겠습니다.
혼자 떠나기로 결심하기 – 두려움과 설렘 사이
“혼자 여행을 간다고요?”
처음 이 말을 주변에 꺼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반응은 걱정과 의아함이었습니다. 사실 저 역시 망설임이 컸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혼자’라는 단어는 여전히 낯설고, 특히 ‘여행’이라는 단어와 붙으면 더 그렇습니다. 일정을 짜고, 비행기를 끊고, 문제 상황까지 오롯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이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1인 여행을 선택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어느새 제 삶이 ‘해야 할 일’로만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사, 가족, 친구, 심지어 SNS의 작은 약속까지—언제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움직이다 보니,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잊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선택한 목적지는 제주도였습니다. 해외처럼 멀지는 않지만, 일상과는 충분히 떨어져 있는 곳. 바다와 오름, 풍경이 주는 자연스러움이 저를 부르듯 느껴졌습니다. 왕복 항공권과 4박 5일 숙소, 렌터카와 식비까지 합치니 적지 않은 금액이었습니다. 손이 떨릴 정도로 큰 지출이었지만, 그 비용을 ‘경험을 사는 돈’이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출발 당일, 공항 대합실에서 혼자 앉아 있을 때 느꼈던 낯선 고요함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일정표를 맞출 필요도 없이 오직 제 호흡과 발걸음에만 집중해야 하는 순간. 그때 저는 어렴풋이 알았습니다. ‘혼자’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만큼, 그 안에는 나를 만나러 가는 묵직한 설렘이 숨 쉬고 있다는 것을요.
여행이 준 자유와 성장 – 울타리 밖에서 발견한 나
제주공항에 도착해 처음 맞이한 바람은 서울과는 다른 결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촉촉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느낌. 그 바람 속에서 제주의 골목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유명 관광지는 피하고, 동쪽의 조용한 마을과 서쪽 해안을 중심으로 움직였습니다.
어느 날 아침, 조천 근처 게스트하우스에서 눈을 떠 한적한 카페로 향했습니다. 따뜻한 귤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느꼈습니다.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 시간이 나에게는 필요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 종일 걷다 보면 예상치 못한 풍경이 끊임없이 펼쳐졌습니다. 제주의 오름, 해안도로, 동굴, 그리고 푸르른 밭들. 어떤 코스를 따라야 한다는 강박 없이, 마음이 가는 길로만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걷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혼자 여행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선택의 자유였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성산 일출봉을 오를지, 늦잠을 자고 한림 해변을 산책할지는 전적으로 제 선택이었습니다. 이 작은 결정권이 쌓여 마음속 울타리를 넓혀 주었습니다. 평소엔 ‘해야만 한다’는 무언의 규칙에 따라 움직였지만, 여행지에서는 ‘내가 하고 싶으면 한다’는 원칙이 삶을 이끌었습니다.
제주도는 의외로 길을 잃기 쉬운 섬이기도 합니다. 내비게이션이 안 되는 마을길을 지나면서 당황했던 적도 있었지만, 현지 주민에게 길을 물으며 나눈 짧은 대화와 미소가 잊히지 않습니다. ‘모르는 것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다’는 작은 용기를 얻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여행 중 렌터카가 비 오는 날 고장 나는 일이 있었는데, 이전 같았으면 당황부터 했을 상황에서 저는 침착하게 보험사에 연락하고, 대체 차량을 기다리며 근처 마을을 걸었습니다. 계획이 틀어져도 괜찮다는 마음가짐은 예상치 못한 여유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돌아와서 누리는 치유 – 일상에 스며드는 변화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였습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보이는 회색 건물들, 반복되는 업무 메일, 점심시간의 익숙한 메뉴들. 예전엔 지루하다고만 여겼던 풍경 속에서도 제주에서 느꼈던 감탄의 잔향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제는 서울 하늘을 바라보며 ‘오늘은 어떤 색일까’라고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순간마다 제주 바다에서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리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현재에 머무는 법, 그건 여행이 저에게 남긴 가장 큰 선물입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결정 앞에서의 태도였습니다. 이전에는 ‘실패하면 어떡하지?’ ‘남들이 어떻게 볼까?’를 먼저 떠올렸다면, 이제는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뭘까?’를 먼저 묻습니다. 혼자 여행을 완주했다는 경험이 제 안에 작은 확신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행이 만능 해답은 아닙니다. 돌아온 뒤에도 업무 스트레스는 여전했고, 가끔은 불안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주에서 배운 느림의 리듬—한 박자 늦춰도 괜찮다는 여유—는 일상의 균형추가 되어주었습니다.
비용 대비 가치를 따져보자면, 항공권, 숙박비, 렌터카, 식비까지 모두 합쳐 약 100만 원가량이 들었습니다. 숫자만 놓고 보면 결코 작은 돈이 아니지만, 그 지출을 통해 얻은 자유, 관점의 확장, 그리고 자기 신뢰는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자산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이후로도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면, ‘그때 제주의 비 내리던 골목길에서 길을 잃었던 나’에게 조용히 물어봅니다. “너는 어떻게 했더라?” 그러면 마음속 어디선가 ‘먼저 걸어보면 알 수 있어’라는 대답이 들려옵니다.
맺으며 – 당신만의 여행을 응원합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단순히 비행기를 타고 먼 곳으로 가는 일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내 삶에서 한 발짝 물러나 나를 들여다보는 과정이자,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실험해보는 무대입니다. 혹시 지금 혼자 여행을 꿈꾸고 계시다면, 망설임 속에서도 한 번쯤 용기를 내보시길 권합니다.
비행기 값이 아깝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경험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깊어지는 자산이 됩니다. 그 경험이 남긴 자유와 성장은 언젠가 일상 속에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당신을 지탱해 줄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여행자는 결국 자신을 만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비행기 값보다, 숙박비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선물해 줍니다. 그러니 다음 번 연차를 계획하실 때, ‘누구와 갈까?’ 대신 ‘어떤 나를 만나러 갈까?’를 먼저 떠올려 보시는 건 어떨까요?
여러분의 용기 있는 발걸음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