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사적인 취미로 자신의 취향을 알아갈 수 있다면 삶이 더 풍부해지지 않을까요?
나를 채우는 30분으로 나만의 취향이 생기면서 자존감을 끌어올린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작은 셔터 소리가 바꾼 하루 – 필름 카메라 스타터 키트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늘 휴대폰부터 들여다보던 제가, 어느 날부터 필름 카메라를 먼저 집어 들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봄, 인터넷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필름 카메라 스타터 키트가 그 계기였는데요. 구식 감성이 물씬 풍기는 소형 카메라 하나와 컬러 필름 두 롤, 그리고 ‘입문자를 위한 촬영 가이드북’이 세트로 들어 있었습니다. 가격은 7만 원대. “요즘 누가 필름을 써?”라는 친구들의 놀라움을 뒤로하고, 저는 호기심 하나로 결제를 눌렀습니다.
첫 촬영은 집 앞 벚꽃길이었습니다. 휴대폰으로는 수십 번 찍어도 심드렁했던 풍경이, 필름 카메라로 셔터를 ‘찰칵’ 누르는 순간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조리개를 수동으로 맞추고, 필름 감도를 확인하고, 조심스레 감아 올리는 과정이 마치 나만의 의식을 치르는 것 같았습니다.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순간을 음미하는 일’로 바뀐 것이죠.
현상소에서 36컷짜리 필름을 찾아오던 날, 저는 봉투를 뜯는 과정부터 떨렸습니다. 예상보다 노출이 과하거나 초점이 어긋난 사진도 있었지만, 그 불완전함마저도 사랑스러웠습니다. 무엇보다 “이건 내가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든 결과물”이라는 사실이 전율처럼 다가왔습니다.
그 후로 저는 주말마다 카메라를 들고 동네 구석구석을 탐험했습니다. 근처 시장의 번잡한 풍경, 비 오는 날 창문에 맺힌 물방울, 퇴근길 스스로에게 건네는 셔터 한 번…. 찍는 대상은 거창하지 않았지만, 제 시선이 머문 장면을 필름에 담는 과정은 ‘나를 나답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SNS에서 누군가의 ‘좋아요’에 흔들리던 제 감정이, 이제는 “내가 만족하면 그걸로 충분하다”라는 자존감으로 단단해졌습니다.
매달 찾아오는 향긋한 편지 – 스페셜티 커피 구독의 힘
사진으로 하루를 기록하는 습관이 자리 잡자, 자연스럽게 ‘사진 현상 기다리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그 공백을 채운 것이 바로 스페셜티 커피 원두 정기구독이었습니다. 원두 두 종류(200g×2)를 한 달에 한 번, 로스팅된 지 48시간 이내에 빠르게 배송해 주는 서비스였는데, 구독료는 배송비 포함 2만 9천 원. 커피를 좋아했지만 깊이 파고든 적은 없던 제게, 이 구독은 또 다른 ‘취향 실험’이었습니다.
첫 번째 박스에는 과테말라 SHB와 에티오피아 예가체프가 들어 있었습니다. 패키지에는 산지, 품종, 처리 방식, 컵 노트가 정성스레 적혀 있었습니다. ‘라벤더 향·베리류·달콤한 피니시’라는 설명이 적힌 원두를 그라인더에 넣고 갈아볼 때, 고소함과 과일 향이 동시에 퍼지는 순간이 무척 새로웠습니다. 드립포트를 잡고 천천히 물을 내리면, 원두가 부풀어 오르는 ‘블루밍’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새로운 취향을 발견할 기회’가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찾아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다음 달 상자에는 어떤 원두가 들어 있을지 궁금해하며, 커피 노트를 작성하고, 향과 맛을 비교하다 보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다채로워졌습니다. 바쁜 평일 아침, 내린 커피를 머그에 담아 한 모금 마시며 “이번 원두는 엘살바도르답게 견과류 풍미가 진하네” 하고 중얼거리는 시간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사적인 일상의 호사’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저는 더 이상 카페 테이블에 앉아 “괜히 시켰나?” 하는 메뉴 실패를 겪지 않게 됐습니다. 스스로를 ‘라이트 로스트 과테말라 마니아’라고 정의할 수 있을 만큼, 취향이 명확해졌기 때문입니다. 이 작은 확신은 커피 한 잔뿐 아니라 다른 선택의 순간에도 “난 내 취향을 안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졌습니다.
취향이 자존감을 키우는 공식 – 나를 위한 의미 있는 소비
필름 카메라와 커피 구독. 두 소비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작고 사적이지만 반복되는 즐거움이라는 점, 그리고 덕분에 나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 경험을 통해 ‘취향 → 몰입 → 성취감 → 자존감 상승’이라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공식을 체험했습니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필름 카메라, 커피 구독이 작은 취향의 씨앗이 됐습니다. 비용은 크지 않았지만 “내가 좋아할지도 몰라” 하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위해 결정했습니다.
셔터를 누르고 현상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 원두 향을 음미하며 드립에 집중하는 시간은 의도적으로 나를 ‘온전히 현재’에 머무르게 했습니다. 이 몰입이 하루 중 ‘나를 위한 30분’을 만들었죠.
필름 스캔본을 앨범에 차곡차곡 저장하고, 커피 노트에 맛과 향을 기록하면서 손에 잡히는 결과물이 쌓였습니다. 그 기록이 ‘눈에 보이는 성취’가 되어 스스로를 칭찬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사진을 잘 못 찍어도 좋아. 내가 좋아하니까.”
“이 원두는 내 스타일이 아니야. 하지만 경험해 봤으니 다음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어.”
이렇게 실패조차 배움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생기면서, 타인의 평가보다 나 스스로의 기준을 믿게 됐습니다.
여기에 더해 ‘필름 현상 기다리는 3일간의 설렘’ ‘다음 달 커피 상자 언박싱 영상 찍기’ 같은 작은 이벤트들이 삶의 구조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결국 취향을 위한 소비는 ‘내가 주인공인 서사’를 만드는 행위였습니다.
나를 위한 7만 원, 한 달 2만 9천 원이 바꾼 세계
필름 카메라 스타터 키트와 커피 정기구독이 제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나를 설명할 언어’였습니다. “어떤 음악 듣는 걸 좋아해?”라는 질문에 머뭇거리던 제가, 이제는 “빈티지한 톤의 필름 사진과 라이트 로스트 과테말라 커피를 좋아해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혹시 아직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뭘까?” 하고 고민 중이시라면, 거창한 투자보다는 작고 사적인 취미 도구 하나, 부담 없는 구독 서비스 하나로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구매 버튼을 누르는 순간은 1초면 끝나지만, 그 안에서 발견하는 취향과 자존감은 오래도록 당신의 일상을 반짝이게 해 줄 것입니다.
오늘도 당신만의 셔터 소리, 당신만의 커피 향이 스며든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