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사진이 남긴 마음, 앨범이 담은 시간 –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앨범을 고른 이유

by bella001 2025. 5. 21.

얼마 전 "기록을 소비하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시간이 지나도 '남는 것'에 투자하는 것이지요.

이게 바로 디지털 시대에 제가 아날로그 앨범을 고른 이유가 아닐까 하는데요,

지금부터 제가 선택한 아날로그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사진이 남긴 마음, 앨범이 담은 시간 –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앨범을 고른 이유
사진이 남긴 마음, 앨범이 담은 시간 –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앨범을 고른 이유

핸드폰 속 3만 장의 사진, 정작 꺼내보지 않던 날들

스마트폰의 사진 앨범을 열면, 언제 찍었는지도 모를 수많은 이미지가 쌓여 있습니다. 생일 케이크, 길가의 고양이, 여행지의 풍경, 그리고 셀카….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매일 무언가를 찍지만, 그 사진들은 대부분 촬영 후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채 클라우드 어딘가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오래된 외장하드를 정리하다가, 10년도 더 된 가족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그 사진은 인화되어 있지도 않았고, 화질도 썩 좋지 않았지만,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그 속엔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웃고 계셨고, 지금은 어른이 된 제 동생이 유치원 교복을 입고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왜 이토록 중요한 기억을, 손에 잡히는 형태로 남기지 않았을까?”
그래서 저는 처음으로 앨범을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단순히 예쁜 포토북이 아니라, 내 손으로 사진을 고르고, 인화하고, 직접 붙이는 아날로그 앨범을요.

나만의 앨범 만들기 – 손끝으로 완성한 시간의 정리

첫 시작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포토 프린터와 접착식 사진 앨범, 데코 스티커와 컬러 펜 몇 개를 준비했습니다. 필름 사진처럼 보이도록 출력되는 미니 포토 프린터는 다소 비싼 감이 있었지만, 저는 ‘이건 추억을 남기는 장비’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사진 고르기에 들어갔습니다.
“이건 우리 가족 제주도 갔을 때야.”
“이건 친구들이랑 속초에서 바닷바람 맞던 날.”
“이건 내가 요즘 나를 사랑하기로 결심했을 때 찍은 셀카.”
하나하나 골라내는 과정에서 저는 단순히 이미지를 선별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선별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순간은 붙잡고 싶었고, 어떤 장면은 다시 꺼내 보고 싶지 않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앨범 한 장, 한 장에 사진을 붙이고 짧은 메모를 쓰며 제가 살아낸 시간이 비로소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앨범의 첫 페이지에는 이런 문장을 남겼습니다.
2025년 봄 – 바람이 좋았고, 우리는 별일 없이 웃었다.
사진을 찍는 이유는 나중을 위한 것이지만, 지금을 확실히 살아있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니까.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면서 느꼈습니다. 앨범은 기록이 아니라, 감정의 저장소라는 것을요. 누군가에겐 낭비처럼 보일지 몰라도, 저에게는 그 어느 소비보다 가치 있는 일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남는’ 것에 투자하는 이유

앨범을 만들기 시작한 뒤로 저는 ‘기록’이라는 단어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사진을 찍자마자 SNS에 올리고, 좋아요가 몇 개 달렸는지에 따라 그 순간의 가치가 정해지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손수 인화한 사진을 풀칠해 한 장씩 넘겨 보노라면, 화면 속 ‘데이터’가 손끝으로 전해지는 ‘기억’으로 변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요즘은 다이어리에도 사진 조각을 붙이고, 한 달에 한 번 ‘기록하는 날’을 정해 노트북 대신 스티커·컬러펜·접착 코너를 펼쳐 놓습니다. 그 시간은 단순히 물건을 만드는 공방이 아니라, 한 달 치 감정을 정리하고 나 자신을 돌보는 의식처럼 느껴집니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즘 누가 인화해서 앨범까지 만들어요?”

저는 그 질문에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더 남겨야 해요. 안 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거든요.”

디지털 사진은 수천 장이 쌓여도, 스크롤 몇 번이면 사라집니다. 압축 파일 하나가 손상되면 지난 5년의 여행이 통째로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손으로 넘기는 앨범은 ‘한 장씩’ 시간을 마주하게 합니다. 빠르게 넘길 수도, 손가락으로 줌인할 수도 없습니다. 사진을 붙이며 적어 넣은 짧은 메모—‘2024.05.05, 어린이날 한강 피크닉, 돗자리 위 수박’—를 읽는 순간, 당시의 햇볕과 바람 냄새까지 되살아납니다. 그런 점에서 아날로그 앨범은 시간을 천천히 되돌아보는 연습장이자,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연결하는 감각의 통로인지도 모릅니다.

특히 누군가와 함께 앨범을 보는 순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따뜻합니다. 어느 날, 부모님께 만들어 드린 가족 앨범을 식탁 위에 펼쳐 놓고 함께 넘기다가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 사진은 너 어릴 때 울어서 사진관 아저씨가 간식 주셨잖아.”
“이건 아빠랑 낚시 간 날인데, 그날 비 맞았던 거 기억나?”

낡은 필름에서 튀어나온 듯한 사진 한 장이 대화를 만들고, 관계를 다시 이어주었습니다. 스마트폰 속 수많은 사진을 함께 스크롤할 때보다 훨씬 더 깊이, 오래, 풍성하게요. 그리고 그날 밤, 부모님 방에서 앨범장이 ‘탁—’ 하고 닫히는 소리가 들릴 때 왠지 모르게 마음이 충만해졌습니다.

무엇보다 인화와 앨범 작업은 다음 세대를 위한 선물이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수십 년 후 아이들이 태블릿보단 가벼운 홀로그램 스크린을 쓰는 시대가 올지도 모릅니다. 그때 책장 한 칸에 빛바랜 앨범이 놓여 있다면, 아이들은 ‘종이 냄새’와 함께 부모 세대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가로세로 10 × 15 cm 작은 종잇장에 남은 grain(입자)과 약간 흔들린 포커스가 오히려 따뜻한 빈틈이 되어, “그때 엄마 아빠도 완벽하지 않았지만 참 행복했구나”라는 메시지를 전해 줄 테니까요.

결국 앨범은 단지 사진을 모아둔 책이 아니라, 시간·사람·감정을 ‘입체적 기억’으로 엮어 두는 아카이브입니다. 그리고 그 아카이브는 세월이 흐를수록 가치가 빠르게 감가상각 되는 대신, 오히려 복리로 커지는 자산이 됩니다. 오늘의 한 장이 내일은 한 페이지, 내년에는 한 권, 10년 뒤에는 가족을 이어 주는 작은 다리가 됩니다.

그러니 ‘인화는 번거롭고 앨범은 구식’이라고 느끼시더라도, 이번 주말엔 폴더 속 사진 20장만 골라 가까운 사진관에 보내 보세요. 출력물을 손에 쥐는 그 순간, “시간이 흘러도 남는 것에 투자한다”는 뜻이 얼마나 깊은지 분명히 체감하실 겁니다.

 

소비 그 너머, 기억을 고르고 감정을 붙이는 일

앨범을 만드는 일은 단순한 취미가 아닙니다.
그건 기억을 고르고, 감정을 붙이고, 삶을 정리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은, 비로소 ‘기록이 남는 소비’를 통해 가능해졌습니다.
포토 프린터 하나와 사진 인화 비용, 앨범과 펜, 스티커 몇 장. 어찌 보면 사소한 소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소비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를 드러냅니다. 1년 후, 5년 후, 아니 10년 후에도 꺼내볼 수 있는 ‘형태 있는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지금도 핸드폰 속 사진이 넘쳐나고 있다면, 이번 주말엔 한 번 앨범을 꺼내 만들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아무렇게나 찍힌 셀카도, 아무 의미 없어 보이던 풍경도,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낸 증거로 남겨둘 수 있습니다.
당신만의 이야기를, 손끝으로 기록해보세요.
그건 언젠가, 아주 중요한 하루의 증거가 되어줄 테니까요.